북한산 진흥대왕 순수비, 신라 진흥왕16년(555년경), 높이155.1cm, 폭69.0cm, 두께16.6cm, 국보3호, 국립중앙박물관
이 비는 이끼가 끼어 있어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학대사왕심비(無學大師枉尋碑) 또는 몰자비(沒字碑) 등으로 불리어 왔다. 그러던 중 조선 후기 서유구가 10여 자를 판독하여 진흥왕순수비라 이름 지었고, 조선 순조 16년(1816)에 김정희가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승가사에 갔다가 이 비를 발견하여 ‘진(眞)’자를 확인하여 신라진흥대왕순수비로 확정하였다. 그는 이듬해 조인영과 더불어 새로이 68자를 확인하였다. 김정희가 조사한 내력은 이 비의 옆면에 실려 있다. 비의 옆면에는 오른편으로부터 ‘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 丙子七月 金正喜 金敬淵來讀(이것은 신라진흥대왕 순수비이다. 병자년(1816년)7월 김정희, 김경연이 와서 비문을 읽었다)'라고새겨져 있고, 그 옆에 ‘己未八月二十日 李濟鉉 龍仁人(기미년(1859년) 8월 20일 용인사람 이제현)’이 새겨져 있으며, 다시 예서로 ‘丁丑六月八日 金正喜 趙寅永同來 審定殘字六十八字(정축년(1817년) 6월 8일 김정희, 조인영이 함께남아있는 글자 68자를 심정하였다)’라고 새겨져 있다. 이 비는 김정희가 탁본하여 중국의 류연정에게 전달되었고 이것이 그의 [해동금석원]에 실리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. 그 후 일제강점기에 이마니시 류(今西龍) 등이 재조사하여 [대정오년도고적조사보고]에 실렸다.
비문에는 정확한 연대를 알려주는 간지나 연호가 없어 여러학설이 있다. 대체적으로 진흥왕 16년(555)이나 진흥왕 29년(568) 무렵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확정되지는 않았다. 전자는 진흥왕이 16년(555)에 북한산을 순수하였다는 [삼국사기]의 기록을 토대로 이 때에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고 후자는 북한산비의 내용이 568년에 세워진 마운령비, 황초령비와 비슷한 점과 비문 중의 ‘남천군주(南川軍主)’를 근거로 하고 있다. [삼국사기]에 보이는 “진흥왕 29년(568) 10월에 북한산주를 폐하고 남천주를 설치했다”는 내용과 연결하여 이 비는 568년 10월 이후에 세워졌다고 한다. |